
얼마 전 아트포럼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빛의 제국> 연작 중 한 작품이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 50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는 기사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르네 마그리트는 <빛의 제국> 연작을 총 17개의 버전으로 그렸다고 전해진다.
르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미술가다. 초현실주의는 단어 그대로 현실에서 벗어난 상태를 표현하는 미술로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화면을 구축한다. 그동안 당연한 상식이라 여겼던 것에 균열을 일으켜 시각적 혼란, 더 나아가 마음의 요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추구한다. 그래서 시계가 테이블에서 녹아 흘러내리고, 코끼리의 코가 트럼펫으로 되어 있으며, 거대한 바위나 고래가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식의 도상들이 화면에 그려졌다.
<빛의 제국>은 기존에 잘 알려진 초현실주의 작품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차분하다. 얼핏 보면 뭐가 초현실적인 것인지 알아채기 어렵다. 전면의 나무, 가로등, 가옥, 그리고 하늘까지 작품에 그려진 모든 요소들이 사실적으로 깔끔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화면의 하단에 위치한 가옥쪽은 시간 배경이 밤이고, 상단의 하늘은 환한 낮인 것을 눈치채게 된다. 이 지점에서 르네 마그리트가 의도한 초현실성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감상자로 하여금 낮과 밤의 이중성에서 비롯된 혼란과 시간에 대한 성찰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낮이 지나면 밤이 되고, 밤이 지나면 낮이 되는 순환적인 시간적 감각을 흩트려 놓았다.
더 나아가 명암법이 배제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정면에서 바라본 시점과 평면적인 구성은 감상자가 시선을 돌리기 두렵게 만든다. 마치 풍경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밤과 낮의 경계는 매우 날카로운 선으로 구분짓고 있어 화면의 인상은 더욱 강렬해진다. 반면 하단에 위치한 가로등은 더할 나위 없이 따스한 불빛을 은은하게 내뿜고 있다.
차가운 공간 구분에 대비되는 따스한 조명은 르네 마그리트가 추구한 낯섦과 시적인 분위기를 고루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현실에 대한 인식에 혼란을 주고 감상자의 시선을 마치 희롱하듯 붙잡았다가 풀어줬다가를 반복한다.
작품에 시선이 머무르는 경우는 다양하다. 내용에 공감이 가거나, 너무 잘 그렸거나, 무엇을 그린 것인지 모르겠거나 등등 그 이유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단, 이 이유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감상자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감상자가 주체성을 갖고 작품을 대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은 주도권을 온전히 화가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다. 시선을 풀라 하면 풀고, 봐달라 하면 볼 수 밖에 없는. 이 지점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화가로서 높은 역량을 새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