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세한도>, 그 너머의 이야기

오늘 읽을 논문

  • 김현권, 「‘송백(松柏)’과 ‘세한(歲寒)’ 도상 출현과 의미의 변화 - 김정희 <세한도(歲寒圖)> 연구 I」, 『인문학연구』 Vol. 47, 경희대 인문학연구원, 2021
  • 김현권, 「기억 속의 가공된 이미지 소식(蘇軾)의 〈언송도(偃松圖)〉 - 김정희 〈세한도(歲寒圖)〉 연구Ⅱ를 겸하여」, 『미술사학』 Vol. 42, 2021

우리가 아는 <세한도>

<세한도>를 설명하는 방식은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1844년 제주에 유배된 김정희가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 준 그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상적은 스승이 유배 간 뒤에도 청나라에서 구한 귀한 책들을 계속 보내드렸고, 김정희는 제자의 의리에 감동해 그림 한 폭과 긴 발문을 답으로 보냈습니다.

<세한도>의 주제는 『논어』 「자한」 편의 “추운 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에서 차용한 겁니다. 즉, 시련을 당해보니 변치 않고 여전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알아보겠다는 의미입니다.

위의 논문은 여기에서 작품의 근원에 초점을 맞춰 더 깊은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김정희는 왜 하필 이런 모습의 소나무를 그렸는지, 작품의 형식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세한도>에서 알 수 있는 새로운 사실들

<세한도>의 소나무가 소동파(소식)가 쓴 글 속 '누운 소나무(언송)'에서 왔다는 학설이 제기된 적이 있습니다. 소동파가 그린 그림은 지금 전하지 않으니, 김정희는 그림 대신 소동파가 남긴 글을 읽고 상상으로 그렸다고 추정한 겁니다. 몇 해 전에 나온 해석이고 꽤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서두에 소개한 논문은 소동파의 ‘누운 소나무(언송)’의 내력을 처음부터 되짚었습니다. 그러자 뜻밖의 사실이 나옵니다. 소동파는 '누운 소나무'를 그린 적이 없습니다. 그린 사람은 유배지까지 소동파를 따라 내려온 어린 아들이었고, 소동파는 그 그림에 붙일 짧은 글을 지었을 뿐입니다. 그 글에 '엎어져 드리워졌다'는 표현이 들어 있었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의 그림마저 사라집니다. 남은 건 소동파가 쓴 글뿐이었습니다.

소식의 그림으로 전해지는 <고백도(古柏圖)>. 기둥부터 드러누워 있다. 傳 소식(蘇軾), <고백도(古柏圖)> 종이에 먹, 전체 33.8×1196, 국립고궁박물원, 베이징

후대 사람들은 남아있는 소동파의 글만 보고 그림을 상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위의 작품처럼 소나무가 기둥에서 꺾인채 땅에 기어가듯 완전히 드러누운, 실제 나무라면 있을 수 없는 모습이 '소동파의 그림'이라는 이름을 달고 쏟아졌습니다. 정작 진짜에 가까운 그림은 잊혀졌고, 상상이 빚어낸 것들이 시장에서 팔리고 수장가의 손을 거쳐 마침내 청나라 황실까지 들어갑니다. 황제가 낙점하는 순간, 그건 진품이 됩니다.

김정희는 24세 때 북경의 서재에서 바로 이런 형태의 그림과 나란히 적힌 글을 봤습니다. 이 지점에서 그림이 없어 글만 보고 <세한도>를 그렸다는 통설의 전제가 무너집니다. 김정희에게 '소동파의 소나무'는 상상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던 겁니다. 다만 그것이 소동파가 그린 작품이 아니었을 뿐이죠.

김정희, <세한도>, 1844, 종이에 먹, 23×69.2, 국립중앙박물관

<세한도> 속 나무는 기둥부터 드러누운 게 아니라 굳건하게 뿌리를 땅에 내린채 서 있고, 끝의 가지만 늘어진 형태로 그려져 있습니다. 만약 중국에서 본 납작 누운 소나무를 그대로 차용했다면 <세한도>의 나무도 누워 있어야 합니다. 결국 <세한도>의 근원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소식(蘇軾), <목석도(木石圖)>, 종이에 먹, 전체 26.3×50.0, 개인소장(2018년 크리스티 경매품)

<세한도>를 그릴 당시의 김정희는 소동파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기 서화의 본령을 찾아가던 중이었습니다. 다만 소동파 등이 시작한 방식인 사물에 뜻을 담아 표현하는 그림은 여전히 기저에 위치해 있습니다. 오래된 나무와 바위만 그린 <목석도> 같은 그림이 대표적입니다. <세한도>도 사실적인 풍경을 그리는 대신 배경을 지우고 나무 몇 그루와 집 한 채만 남겨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그렸던 겁니다.

그렇다면 그 마음은 어떤 화법으로 표현한 걸까요? 단서는 <세한도> 두루마리 안에 있습니다. 제자인 이상적이 김정희에게 이 작품을 받은 후 청나라로 가져가 사대부들에게 보여주었을 때, 반희보라는 학자가 감상하고 시 한 편을 붙였습니다. 그 첫 구절이 "한 자 남짓한 그림은 운림의 필법으로, 만 리 뱃길 따라왔네"입니다. 운림은 원나라의 화가 예찬의 호입니다.

<세한도> 속 물기 없는 붓으로 까끌까끌하게 그린 절제된 필묵법, 최소한으로 줄인 경물,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화면에서 느껴지는 적막은 모두 예찬 화풍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세한도>는 예찬의 화풍과 위의 <목석도>식 구성을 융합시켜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널리 알려진대로 <세한도>는 제자의 의리에 답한 그림이고, 『논어』의 한 구절을 담은 그림입니다. 이건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더해 논문을 읽으면 새로운 사실과 의미를 조금 더 알 수 있습니다. 배경은 왜 생략되어 있는지, 화면 전반의 적막한 분위기는 누구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를 말이죠. 이런 내용들을 알고 작품을 보면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확실히 많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품을 보고 즐기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저는 이렇게 이유를 찾아가는 지점에서 희열을 느끼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