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런 법이란 없다.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이 말 앞에서 멈춘 적 있으신가요? 송나라 문인 황정견은 그 '원래'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짚었습니다. 규칙을 따르는 것과 규칙에 갇히는 것은 다릅니다.

요즘 조카보는 재미에 빠져있다. 이제 5살이 된 조카는 내가 뭘 가르쳐주면 항상 “왜?”를 말한다.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애써 납득 가능한 대답을 찾느라 바쁘다. 돌이켜 보면 나도 어릴 때 그랬다. “왜?”를 입에 달고 살았다. 어른들에게 혼날 때도 있었다. 지금은 “왜”라는 질문을 거의 하지 않는다. 원래 그렇다는 것을 이해하고 적당히 수긍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원래 그런 거야.”
누구나 살면서 이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대개 그 말은 의문 없이 받아들여진다. 오래된 것은 검증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지켜져 온 것에는 어딘가 신뢰가 쌓여 있다. 그러나 정작 이유를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대부분 같다. “원래부터 그랬으니까.” 이런 경험이 쌓이다보면 더 이상 “왜 그러한가”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규칙을 따르는 것과 규칙에 갇히는 것은 다르다.
송나라의 문인이자 서예가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은 이 '원래부터'라는 말의 취약한 논리를 지적했다. 그와 가까운 사이인 소식(蘇軾, 1037-1101)은 당대 최고의 문인이었지만 서예만큼은 끊임없이 구설에 올랐다. 글씨가 고법(古法)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고법이란 왕희지 이래 선대 명가들의 글씨에서 추출된 기준, 즉 '이렇게 써야 올바른 글씨'라는 불문율을 의미했다. 사대부들은 그것을 내세워 소식의 서예를 비난했다. 그 비난에는 서예의 역사를 알고 있다는 자부심도 은근히 실려 있었다.
황정견은 비난의 뿌리에 대해 되물었다. 고법은 처음부터 하늘이 내려준 것인가? 원래 그래야 한다는 법은 누가 준 것이냐는 물음이었다. 당시 사법체계도 처음부터 있던 게 아니라 오래 전부터 권위있는 자들의 판단에 따라 서서히 정착된 것에 불과하며 글씨 역시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처음부터 규범이란 것은 없고, 점차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원래 서예는 이렇게 써야 한다는 말은 우스운 일이라는 의미다.
소식은 황정견의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고 한다. 자신을 향한 비난이 뿌리에서부터 흔들리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친구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컸을 것이다.
규칙을 열렬히 수호하는 사람들이 정작 그 규칙의 기원에 무지한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규칙은 잘 다듬어 발전시켜 나가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숨을 수 있는 방패다. 반면 소식처럼 규칙을 존중하되 자신의 방식을 밀고 나가는 사람은 규칙에 어긋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봐야 한다. 잘 하면 자신이 새로운 본보기가 될 수 있고, 못해도 규칙에 얽매여 이도저도 아닌 상태를 면하게 된다.
황정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소식의 서예를 옹호하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서체를 개척했고, 훗날 그 역시 또 다른 고법의 기원이 되었다.
작가가 '이것은 미술답지 않다'는 말 앞에서 위축될 때, 직장인이 '우리는 원래 이렇게 해왔다'는 관행 앞에서 멈칫하게 될 때, 떠올려야 할 질문은 하나다.
“그 법은 어디에서 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