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적용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직업 2위, 역사학자

미술사와 한문의 관계

미술사를 비롯해서 동아시아학 모두 한문은 필수다.

특히 회화사의 경우는 문학과 미술의 융합을 추구했기 때문에 두 분야에 대한 높은 소양을 요구한다. 못해도 작품에 있는 제발과 인장 정도는 해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대학원에 입학하자마자 학과 차원에서 한문과 서예사 공부를 강하게 시켰고 이때의 경험은 여전히 꽤 도움이 된다.

한문을 공부하면 좋은 점은 단순히 문장 해석을 잘 하는 능력에 있지 않다. 한문의 특성상 맥락과 글을 둘러싼 주변 정황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제대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땀, 한 땀 해석하는 노력을 통해 텍스트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교수님께서는 나에게 석사 졸업하면 서당부터 들어가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한림대학교 부설 태동고전연구소에 지곡서당이라고 있는데 이곳에 들어가서 3년 동안 연수를 받고 오라는 말씀이셨다.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니라 확답을 기대하시는 게 느껴져서 그때마다 꽤 곤혹스러웠는데 졸업하자마자 박물관에 취직을 하면서 없던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다고 한문을 등한시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나의 경우는 내가 필요한 문헌은 대부분 일본에서 번역을 해놓은 게 많았다. 심지어 일본의 역대 화가들의 인장을 모두 모아서 해독한 전집도 있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었다. 한정된 시간을 두고 한문 공부에 시간을 쏟을 것인가, 미술작품 자체의 해석에 시간을 쏟을 것인가 양자 택일을 해야 될 것만 같았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이기도 하고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1. 기초 데이터 확보 역량 : 제발 및 인장 해독과 같은 금석학적 접근
  2. 비평적 안목 및 맥락화 역량 : 양식 분석, 도상학적 해석, 사회적 맥락 파악 등

연구를 열심히 하신 선학들은 이 두가지 역량을 모두 갖춘 분들이 많다. 연구자라면 둘 모두를 거머쥐도록 하는 게 맞다. 그럼에도 나는 일을 하면서 공부해야 하기에 이게 현실적이지 않아 보였다. 둘 중에 하나만 잘 해도 성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문학을 전공한 사람에게는 절대 미치지 못하겠지만 기초적인 해석 정도만 할 줄 안다면 나머지 시간은 2번에 투자하는 게 맞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왠지 2번을 갖춰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스펙트럼이 더 넓어지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AI 적용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직업들

이 표는 AI를 활용하면 좋을 직업 순위다.

AI와 관련된 직업 순위표가 나오면 ‘AI로 인해 대체될 직업 관련인가’라는 생각부터 들지만 이 순위표는 그 반대다. ‘AI 적용 가능성이 가장 높은 상위 40개 직업 순위’이고 2위에 역사학자가 올라있다. 1위는 통역사 및 번역가이다.

AI가 발전하면 번역가들의 일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번역 품질이 좋아지고 있다는 걸 누구나 체감하고 있었기에 일리있는 말처럼 들렸다.

지금은 예상과 달리 단순 번역에서 벗어나 AI 번역물의 품질 관리, 콘텐츠 현지화 감수라는 고부가 가치의 일로 옮겨가고 있다.

기존의 역사 연구는 사료 발굴 및 번역, 패턴 도출, 논문에 필요한 보고서 작성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이제는 이 부분을 AI에게 맡길 수 있기 때문에 AI 적용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이렇게 마련된 기초 데이터를 ‘나만의 관점으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와 글쓰기 역량이다. 이 순위를 발표한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도 같은 의미로 통역사, 번역가와 함께 역사학자를 높은 순위에 배치한 듯하다.

실제 내가 갖고 있는 문헌을 AI로 번역을 해보니 정확도가 놀라울 정도로 높았다. 아니, 내가 사전을 찾아가며 하는 것보다 더 잘했다. 날개가 생긴 것 같은 기쁨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10년 후에는 어떤 준비를 해놔야 하려나라는 고민이 들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아마 어렴풋하게 생각했던 나만의 관점을 바탕으로 해석하여 맥락화하는 능력과 글쓰기 능력이 더욱 요구되는 시대가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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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2쇄를 간행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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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에 독립해서 혼자 일을 시작하며 강의, 콘텐츠, 전시기획, 컨설팅까지 큐레이터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해봤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일을 너무 많이 벌려 놓기만 했나’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가장 잘하면서 질리지 않을 일로 미니멀하게 좁히고 싶어졌습니다. 몇 개월에 걸쳐서 이런 고민, 저런 고민을 하고 계획과 구조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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