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다

에두아르 마네, <아스파라거스 다발>, 1880, 발라프-리하르츠미술관, 쾰른

하루를 보내면서 접하게 되는 광고의 수가 2020년대 들어 10,000건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중 실제 기억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그만큼 눈에는 보이지만 보지 않고 지나치는 것들이 많다. 출근길에 늘 지나치는 가로수의 잎이 어제와 오늘 다른 빛을 보이고 있다는 것도, 창가에 놓아 둔 화분의 그림자가 시간에 따라 조용히 방향을 바꾸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때가 많다.

그만큼 아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다. 어쩌면 알고 있다는 믿음 하에 보는 것을 대신한 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1880년,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는 아스파라거스 다발을 그렸다. 현재 독일 쾰른의 발라프-리하르츠미술관에 걸려 있는 이 작품에서 마네는 채소를 미화하지 않았다. 줄기 끝의 보랏빛이 저마다 다른 농도를 지니고 있는 모습, 묶인 끈이 누르는 자리에 미세한 그림자가 생긴 모습, 그리고 아래에 깔려 있는 잎사귀의 축 늘어진 질감이 위의 단단한 줄기와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까지. 마네는 이것들을 그저 눈에 보이는 그대로 ‘기록’했다.

알랭 드 보통은 이 그림을 두고 이렇게 썼다.

“그는 미술을 이용해 아스파라거스에 없는 성질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이미 존재했지만 사람들이 무시하던 매력을 드러냈다. 우리가 그저 보잘 것 없는 줄기를 볼 때, 마네는 각 줄기의 미묘한 개체성, 특유의 빛깔과 색조의 변화에 주목하고 그것을 기록했다.”

알랭 드 보통, 존 암스트롱, 『영혼의 미술관(Art as Therapy)』(문학동네, 2013)

마네는 아스파라거스에 없는 성질을 부여하면서까지 이상화시키지 않았다. 차분히 아스파라거스를 들여다보고 화폭에 정성스럽게 옮겼을 뿐이다. 즉, 이미 존재했지만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치던 매력을 드러냈을 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작가의 역할에 대한 하나의 정의를 찾을 수 있다.

미술 작가는 이미 존재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것을 포착해 마침내 그것을 보이게 하는 사람이다.

무언가를 더 잘 보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이 아니라 더 오래 머무는 시선이 필요할 때가 있다.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다시 살펴봐야 할 때도 있다. 그제야 비로소 이미 존재했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매력 혹은 유용함이 새삼 드러나기 시작한다.

작가가 대상 앞에 앉아 차분하게 살펴볼 때, 직장인이 익숙한 업무를 처음인 것처럼 다시 살필 때 이 시선은 그동안 놓쳤던 것을 새롭게 보게 해준다. 매일 작성하는 보고서와 매주 반복하는 회의의 흐름을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살펴보며 '왜 이 항목이 여기에 있는가', '이 순서가 정말 최선인가', '이 단어가 적확한가'를 되물어봐야 한다.

마네가 이 작품을 세심한 시선으로 포착하여 그리기 전까지는 아스파라거스 줄기 끝의 보랏빛을 아름답다고 여겼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이 보랏빛 농도 차이를 발견한 것처럼 익숙한 업무 안에도 그동안 보지 못한 미세한 결이 숨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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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2쇄를 간행하게 되었습니다.

5년 전에 독립해서 혼자 일을 시작하며 강의, 콘텐츠, 전시기획, 컨설팅까지 큐레이터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해봤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일을 너무 많이 벌려 놓기만 했나’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가장 잘하면서 질리지 않을 일로 미니멀하게 좁히고 싶어졌습니다. 몇 개월에 걸쳐서 이런 고민, 저런 고민을 하고 계획과 구조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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