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교라는 치명적인 유혹

기교라는 치명적인 유혹
미불, <춘산서송도>, 1100년경, 국립고궁박물원, 타이베이
“평담하고 천진한 것이 많아 당나라에도 이러한 품격은 없어 필굉의 위에 있으며, 근세의 신품 중에서도 격이 가장 높아 더불어 비교할 만한 것이 없다. 산봉우리들이 들고 나며 구름과 안개가 끼고 걷히는 데 교묘한 뜻을 꾸미지 않아 모두 천진함을 얻었다.” - 미불(米芾), 『화사(畵史)』

예술가에게 가장 치명적인 유혹은 기교에 빠지는 일이다. 캔버스 앞에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할 때 무의식적으로 새롭고 세련되어 보이거나 완벽한 것을 선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본문에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모두 담고 싶은데 그러자니 전체 흐름이 흐트러지는 것 같고 버리자니 아깝다.

이럴 때 떠올리면 좋을 개념이 있다.

중국 송나라의 문인화가 미불은 당시 최고의 품격으로 여겨졌던 당나라 회화의 화려함를 뛰어넘는 최고의 품격으로 '평담(平淡)'과 '천진(天眞)'을 제시했다. ‘평담’은 평이하면서 담담함을, ‘천진’은 하늘의 뜻을 그대로 따른다는 의미로 인위적이지 않은 순수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애기를 보며 ‘천진난만하다’고 할 때의 그 ‘천진’이다. 두 개념 모두 인위적이지 않아 담담하지만 이 지점에서 오히려 깊은 멋이 나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아시아의 화가들은 일생에 걸쳐 필묵의 기교를 연습했는데 이 연습의 궁극적인 목표는 역설적이게도 그 기교를 잊는 데 있었다. 완벽하게 체화된 기술 위에서 억지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는 자의식마저 사라졌을 때 붓은 스스로 움직인다. 산봉우리가 솟고 구름이 걷히는 것이 그저 대자연의 호흡이듯, 창작 역시 억지스러운 의도를 덜어낼 때 비로소 흉내 낼 수 없는 생명력을 얻는다. “위대한 기교일수록 졸박하게 보인다”는 의미의 ‘대교약졸(大巧若拙)’도 같은 맥락에서 화가들이 목표로 삼았던 경지다.

미불이 극찬한 그림 속 산봉우리는 웅장한 척하려 애쓰지 않고, 구름과 안개는 생동감있는 척하지 않았다. 얼핏 보기엔 심심한 화면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자연의 호흡이다. 창작 역시 억지스러운 의도를 덜어낼 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기교를 쌓는 것과 기교를 버리는 것, 이 두 가지는 모순이 아니라 목표를 향한 예술적 여정의 앞과 뒤다.

지금 무언가를 만드는 중이라면, 혹은 잘 해내려는 마음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다면, 미불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 번 던져볼 만하다. 지금 내가 더하고 있는 것이 작업을 살리는 일인지, 아니면 내 불안을 달래는 것에 불과한지를.

교묘하게 뜻을 꾸미지 않을 때, 천진함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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