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도쿄에서 꼭 봐야 할 작품들
지난 주에 아트투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교토, 나가사키 등 다른 도시들을 다니느라 도쿄는 4년 만이었습니다. 2박 3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강행군으로 고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여러 전시들을 보고 왔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본 작품들은 특히 걸작으로 평가받는 것들이 많아 오랜만에 본 도쿄 거리의 풍경과 함께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함께 갔던 분들과 어떤 작품이 가장 마음에 남는지를 나눴는데 네즈미술관에서 본 에도시대 린파(琳派) 그림이 가장 인기가 좋았습니다. 아무리 내재되어 있는 의미가 좋고, 작품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감동적이어도 일단 작품의 조형성이 좋아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보고 온 전시 후기와 대표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5월에 일본에 갈 계획이신 분들은 특히 챙겨 보시면 도움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이번 아트투어의 목표는 제비붓꽃(아이리스) 개화 시기에 맞춰 4월에만 공개하는 네즈미술관의 <연자화도병풍>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가는 김에 도쿄국립박물관, 국립서양미술관, 국립신미술관, 세이카도분코미술관, 아티존미술관도 다녀왔습니다. 투어를 준비해준 여행사는 ‘내가그린여행’이라는 곳으로 대학원, 학회 등 미술사 답사를 전문으로 해서 손발이 아주 잘 맞습니다.

아트투어의 컨셉은 미술사학과 대학원 답사 때 그랬던 것처럼 작품을 보는 것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먹는 것, 자는 것, 이동하는 것을 쾌적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여행사에서 마련해준 전용버스를 타고 다니며 가이드님의 인솔 하에 “내리세요”하면 내리고, “타세요”하면 타면 됩니다. 전시를 보고 나오면 미술관 앞에 버스가 와있어서 많이 걷지 않아도 됩니다. 체력은 전시볼 때와 뒷풀이할 때만 소진할 수 있어 좋죠. 전시를 보러 갈 때도 짐은 버스에 놔두고 카메라만 들고 내리면 되는데 사소한 거지만 여행에서 꽤 큰 힘이 됩니다.


여행사에서 호텔도 늘 최소 4성급으로 준비해줍니다. 식사도 제가 맛집은 잘 모르는 편인데 이렇게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곳으로 잘 예약해줍니다. 먹고 자는 건 걱정하지 마시고 전시 관람에만 몰입하시라는 취지랄까요?

일정이 끝나면 저녁에는 다음 날 볼 전시의 프리뷰 강의가 있습니다. 각자 마실 음 · 주류와 간식을 갖고 와서 편하게 대화하며 작품 공부를 합니다. 오늘 본 작품 중에 가장 좋았던 작품이 뭔지 어떤 점이 와닿았는지도 나누는데 각자의 취향과 생각을 엿볼 수 있어 추억에 많이 남습니다.
호쿠사이의 《후가쿠36경(富嶽三十六景)》 from 이우치컬렉션 / 국립서양미술관

첫날에는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우키요에 특별전을 보러 국립서양미술관에 갔습니다. 우키요에는 원래 인쇄물이기 때문에 에디션이 상당히 많습니다. 유명한 작품이어도 목판이 많이 마모된 상태에서 인쇄된 후기본보다 목판을 갓 만들었을 때 인쇄한 게 미술시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이번 특별전은 초판본들이 많이 나와서 그동안 익히 봐왔던 것과 다르게 선이 예리하고 색감도 달라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좋았습니다.


이 작품은 후지산을 그린 <개풍쾌청>의 다른 버전입니다. ‘Blue Fuji’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18세기 이후에 유행했던 베를린 블루 위주로 채색한 작품입니다. 대량 인쇄에 들어가기 전에 테스트삼아 만들었거나, 아니면 소수의 주문자를 위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호쿠사이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기존 우키요에의 패러다임을 풍경 위주로 바꿨을 정도로 풍경화에 능했는데 그의 과감한 구도와 클로즈업, 평면성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이 Blue Fuji는 현재 7점만 전해지고 있을 정도로 희귀본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자주 접했던 붉은 색 위주의 후지산입니다. 이 작품이 일출 때 아침해를 서서히 받는 모습이라면, 블루 후지는 달빛 아래 혹은 동이 트기 직전 새벽녘의 서늘함을 느끼게 합니다.

유럽에서 회화는 르네상스시대 이래 화면의 한 지점을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커지게끔 공간을 배치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원근법적인 공간 인식이 상식이었죠. 그런데 유럽에 유입된 우키요에를 본 유럽 화가들은 이 작품처럼 원근법을 꼭 쓰지 않아도 충분히 사실감있는 공간을 창출할 수 있다는 영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건물도 지붕 일부만 남겨두고 과감하게 잘라버리는 방식도 신선하게 다가갔습니다. 쉽게 말해 ‘이게 되네?’였을 겁니다.



전시 도록에는 이렇게 우키요에 작품의 앞면과 뒷면을 함께 볼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지금은 우키요에를 값비싼 ‘미술’ 작품으로 대하고 있지만 원래 우키요에는 소바 한 그릇 값이면 누구나 살 수 있는 인쇄물이었습니다. 진귀한 작품 모시 듯 하지 않고 만지작거리며 즐길 수 있는 매체였죠. 도록에 앞뒷면을 모두 게재한 것은 에도시대 당시 사람들의 손맛을 느꼈으면 하는 취지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국립서양미술관에 온 김에 중세부터 근대까지 연대기적 전시를 하고 있는 상설전도 보고 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서양미술 작품이 거의 없기 때문에 서양미술사를 전공해도 학예사로서 실무를 할 기회가 많지 않지만 일본은 근대 이후 꾸준히 수집을 해와서 이렇게 연대기 전시까지 가능합니다. 이 점은 볼 때마다 부럽긴 하죠. 매번 “누구부터 누구까지”라는 타이틀 하에 주변 작품들로만 채워놓아 맛만 보는 기획전만 접하다가 흐름을 주욱 훓어볼 수 있는 전시를 볼 수 있어 시원하니 좋았습니다.

어릴 때는 서양미술사를 전공해서 유럽에 살면서 이런 종교화나 설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공부해서 미스테리를 해석하는 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그림의 일부를 긁어내면 예루살렘에 십자군 원정을 갔던 어느 기사가 자신이 몰래 감춰 놓은 성배의 위치를 암호로 남겨놨다는, 이런 영화같은 일들을 꿈꿨죠.
실제 유학 갈 생각으로 이래저래 알아보고 교수님들께 여쭤보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를 잘 해야 되고, 하나 더 가능하다면 히브리어까지 공부해야 하며, 현지인보다 현지 문화에 더 조예가 깊어야 하고 문법도 더 고급 문법을 구사할 줄 알아야 되고 등등등 엄두가 안나더라구요. 저걸 다 할 수 있는 능력은 차치하더라도 일단 그 사이에 ‘뭐 먹고 살지, 유학 비용은 어떻게 해결하지, 저거 다 하고 나면 난 몇 살이지’라는 생각과 함께 결국 방향을 틀었습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와 <다빈치 코드>, 만화 <마스터 키튼>과 <몬스터> 등을 참 좋아했는데 아마 그 영향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지금은 비스무리하면서도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지만 중세 작품들을 보면 꿈을 꿨던 어릴 때가 많이 생각납니다.
물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 - 어부, 낚시의 즐거움, 그리고 은둔의 꿈 /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

국립서양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옆에 위치한 도쿄국립박물관에 갔습니다. 인도, 중국, 한국 등 아시아의 미술을 모아놓은 동양관에 갔습니다. 야간 개관하는 시간대여서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관에서는 청자, 분청사기, 백자를 볼 수 있었습니다. 대단한 유물이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시기별 특징을 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어 공부하기에는 좋았습니다. 그리고 중국 서화실로 들어가니 우리나라 조선시대 회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던 명나라의 절파 회화들이 테마 전시로 나와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명나라 후기 절파 화가인 장로의 <어부도>입니다. 서화실에 들어서자 이 작품이 바로 보였는데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매우 보기 힘든 작품이거든요. 원래 고코쿠지(護国寺) 소장본이지만 관리를 위해 도쿄국립박물관에 기탁한 작품입니다. 조선 중기 회화를 논할 때 대표 선수격으로 거론되는 작품일 정도로 후기 절파를 상징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기증품과 달리 기탁품은 이번처럼 특별한 기회에만 전시에 나오기 때문에 실물을 접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오랫동안 도판으로만 보다가 이렇게 우연히 마주하게 되니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어? 저게 나왔다고??”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절파 회화는 문인화가들로부터 너무 스킬에만 의존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점잖은(을 표방하는) 사대부 입장에서는 그림이 너무 기교적이라 천박하게 보였을 겁니다. 물론 당시 미술시장에서 절파 회화가 잘 나갔기 때문에 분명 질투도 있었을 거고요. 이 말은 거꾸로 생각하면 절파 회화가 굉장히 실력이 높고 스타일리쉬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도 인물의 옷주름을 보면 과감하게 치고 나갈 때와 숨죽이며 얌전하게 그을 때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어느 곳 하나 망설이는 부분이 없습니다. 반대로 얼굴 묘사는 더할 나위없이 세밀합니다. 이런 높은 실력 때문에 저는 절파 회화를 좋아합니다. 일단 미술은 조형적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하고 봐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리 작가의 메시지가 훌륭하고, 작품에 내재된 뜻이 좋아도 조형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미가 희석되기 때문입니다.
고린파-국보 <연자화도>와 오가타 고린의 팔로워들 / 네즈미술관

도쿄 오모테산도에 위치한 네즈미술관은 우리로 치면 성북동의 간송미술관, 리움미술관, 호림박물관을 합쳐 놓은 것 같은 미술관입니다. 고즈넉한 정원은 옛날의 성북동 간송미술관을 닮았고, 세련된 전시실 공간은 리움미술관과 호림박물관을 닮아있습니다. 사립미술관 특유의 명품 컬렉션 역시 그러합니다. 네즈미술관이 자랑하는 대표작인 오가타 고린의 <연자화도병품>은 일반 상인 계층이 문화의 소비 주체로 부상하던 18세기에 제작된 채색화입니다.


이전의 병풍은 대개 주요 주문자였던 권력층의 취향에 맞춰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장식성이 강화된 게 특징입니다. 반면 이 작품은 심플하면서도 명확하게 모티프를 묘사하고 있어 병풍 그림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역삼각형을 이룬 제비붓꽃이 병풍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덩실거리며 배치되어 평면 속 리듬감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도 부차적인 요소를 모두 제거한 채 오로지 꽃만 부각시킨 표현은 화면의 엄격함과 주제 의식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18세기 작품임에도 마치 간결한 현대 디자인을 보는 것 같습니다.
배경에 덧붙인 금박은 금지(金地)라고 합니다. 금지는 시선이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막아 평면성을 강조하고, 불필요한 것을 덮어 주된 모티프인 제비붓꽃만 돋보이게 하는 역설적인 효과를 보여줍니다.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물 뒤로 나가면 정원과 카페가 있는데 이렇게 개울에는 제비붓꽃이 만개해있습니다. 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서 <연자화도병풍>을 전시하는 건 네즈미술관의 전통적인 루틴입니다. 전시를 보고 옆의 네즈 카페에서 차를 마시거나 뮤지엄샵에서 이 작품을 모티프로 만든 여러 기념품을 고르는 재미도 좋습니다.

테이트미술관-YBA & BEYOND 세계를 바꾼 90년대 영국 미술 / 국립신미술관

국립신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는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영국 미술의 격변기를 조명합니다. 사회 전반에 팽배한 긴장 속에서 기존 제도권 미술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하며 등장한 ‘Young British Artists(YBA)’를 거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전시는 약 60여 명 작가의 작품 100여 점을 통해 회화부터 몰입형 설치까지 YBA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한자리에서 보여줍니다. 이 전시를 보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데이미언 허스트 개인전까지 보면 균형잡힌 공부가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섹션마다 설치된 영상은 시간을 두고 음미할 만합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는 이들도 더 이상 동시대 미술이 아니게 되었지만 작품이 전하는 사회 구조 비판, 개인 서사 등의 메시지는 여전합니다. 세기말 영국이 겪은 사회 · 문화 변혁의 에너지가 어떻게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바꾸었는지 마치 당시 영국에 와있는 것 같은 현장감과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전시입니다. 프리즈 아트페어의 모태가 되었던 잡지 『frieze』의 0호(1991년 간행) 등 주요 간행본들도 볼 수 있습니다. 뮤지엄샵에 가면 복간본도 판매하고 있어 기념품으로 간직할 수 있습니다.


원뿔을 뒤집어 놓은 듯한 구조로 유명한 국립신미술관 내 카페입니다. 1층에서 올려다 볼 때는 몰랐는데 위로 올라와서 같은 높이에서 바라보니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하나의 작품으로 삼아 전시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떨어져 있어 자연스레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게 되더라구요. 만약 맞다면 현대미술관스러운 재치있는 발상 같습니다.

다음 전시를 보러 가는 길에 도쿄타워가 가장 잘 보인다는 시바공원에 들렀습니다. 날씨가 무척 좋아서 잔디밭에 삼삼오오 모여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 덕분에 바쁜 답사중이지만 주말의 한가로움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움을 맛보다 - 가이세키 그릇과 차노유 / 세이카도분코미술관

2022년에 도쿄역 근처로 이전 개관한 세이카도분코미술관에서는 일본의 접대 문화와 도자기를 엮은 전시를 관람했습니다. 이 미술관이 이전하기 이전에 논문 자료를 복사하러 가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건물이 오래되었지만 잘 관리되어 고요하고 정갈한 미술관 느낌이었는데 이번에 새로 개관한 곳을 가보니 명품샵처럼 휘황찬란하더군요. 이곳도 워낙 유명한 사립미술관이어서 컬렉션의 퀄리티가 높은 것은 물론, 전시 구성도 정교해서 작품을 ‘접대 문화와 요리’라는 키워드로 다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생긴 건 평범하게 옻칠을 한 작은 차통이지만 무려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3명의 ‘천하인’들의 손을 모두 거쳤던 <쓰쿠모나스(付藻茄子)>입니다. 이 작품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넘어갈 때는 전투 중에 산산조각이 난 채로 발견되었지만, 파편을 정성껏 이어 붙여 수리해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X선 촬영 사진을 보면 안쪽에 자잘한 파편의 흔적이 그대로 나있습니다.
원래 일본은 긴쓰기(金継ぎ)라고 해서 파편을 접합하고 접합한 부위를 금칠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상처와 결함을 기물의 역사로 승화하고 불완전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와비(侘び)’의 미학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깨진 흔적을 철저하게 감췄습니다. 이를 두고 아시카가 쇼군가부터 시작하여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거쳐 내려오는 천하통일의 절대적 권위와 영속성을 도쿠가와 이에야스 정권이 온전히, 그리고 무결하게 계승했음을 상징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정치적 수리로 해석합니다. “내가 진정한 계승자”라는 상징으로 삼았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별 것 아닌, 어찌 보면 참 소박한 소품에 불과한데 이런 역사성이 더해지니 왠지 아우라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전시를 모두 본 후에는 긴자로 이동해서 문구류로 유명한 이토야에 가거나 근처에서 각자 쇼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쇼핑을 마치고 모인 후에는 각자 무엇을 샀는지 구경하며 나누는 대화도 꽤 재밌습니다. 서로의 취향과 관심사를 알 수 있거든요. 고양이 그림이 들어가있는 다양한 문구류를 구매한 멤버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마지막 날 오전에는 에비스로 쇼핑을 간 그룹과 츠타야 서점에 간 그룹으로 나눠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점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 분 등 각자 관심사에 맞게 휴식을 취했습니다. 저는 일본미술사 신간이 있는지 구경하다가 문구 코너에서 서성였습니다.
클로드 모네 - 풍경을 향한 물음 / 아티존미술관


공항에 가기 전에 마지막 코스인 아티존미술관의 클로드 모네 전시를 봤습니다. 올해는 클로드 모네(1840–1926)가 세상을 떠난 지 100주기가 되는 해입니다. 아티존미술관은 방대한 서구 근대 미술 컬렉션을 가진 미술관으로 유명합니다. 이번 전시는 오르세미술관의 전폭적인 학술 협력과 작품 대여 덕분에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열렸던 모네 전시 중에서도 전례 없는 규모이며, 질적 수준 또한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전시 구성은 단순히 한 화가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인상주의 미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풍경을 보는 눈의 혁신’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생 라자르 역>, <런던, 국회의사당 : 안개 속의 햇빛 효과>, <루앙대성당> 같은 대표작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모네가 일생에 걸쳐 천착했던 빛과 공기의 변화를 전시의 흐름 속에서 명료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모네가 1873년경에 그린 <점심 식사>라는 작품입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대작으로 모네가 아르장퇴유 시절에 그린 일상 풍경입니다. 화면 중앙의 식탁에는 식사를 마친 흔적이 남은 정물들이 배치되어 있고, 그 주변으로 모네의 아내 카미유와 아들 장이 등장합니다. 이 작품의 의의는 일상적인 가정의 한 때를 역사화에나 쓰일 법한 거대한 규모(160×201cm)로 그렸다는 데 있습니다.


세부 표현에서는 빛이 나뭇잎 사이를 통과하며 바닥에 만드는 반점을 주목할 만합니다. 사실적인 입체감 표현을 위한 명암법이 보편적이었던 시대에 사물에 내려 앉은 빛의 묘사를 보면 모네가 빛을 얼마나 정교하게 관찰했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러면서도 애기가 쓴 밀집 모자에서 볼 수 있듯이 대상의 사실성도 놓치지 않고 있어 모네의 높은 화격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