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툴을 익혀도 달라지지 않는 이유

새로운 툴을 익혀도 달라지지 않는 이유
폴 시냐크, <생 트로페 항구>, 1901-1902, 캔버스에 유채, 국립서양미술관, 도쿄

SNS를 보다가 새로운 AI나 플랫폼을 발견하면 저장하기에 바쁩니다.

문제는 저장만 하고 따로 정리해서 내 것으로 소화하지 않는다는 데 있죠. 새로운 걸 배워야 한다는 생각은 늘 있습니다. 온라인 강의를 결제하고, 생산성 앱을 깔고, 업계에서 뜨고 있는 프레임워크를 공부합니다. 그런데 이중에서 내 업무에 밀착되어 꾸준히 쓰고 있는 건 얼마나 될까요?

저는 이 문제의 원인이 의지가 아니라 방향에 있다고 봅니다. 새로운 '방법'을 익히는 데에만 집중하지, 정작 그 방법을 '왜, 나에게 어떤 의미로' 쓸 것인지를 건너뛰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선 일의 방향성, 업무 스타일을 정해두면 1차적으로 거를 수 있는데 일단 수용만 하기에 급급해서 결국 예전으로 돌아가곤 하죠.

19세기 말, 조르주 쇠라, 폴 시냐크 등의 신인상주의 화가들은 당시 발달했던 색채 과학을 회화에 적용했습니다. 인상주의가 빛과 색을 직관적으로 포착했다면, 이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색채 이론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점묘법이라는 기법으로 구현했습니다. 캔버스 위에 수만 개의 색점을 찍어 관람자의 눈에서 색이 섞이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분명한 기술적 혁신이었습니다. 그림을 마치 프린터로 인쇄하듯 그린 것이죠.

그런데 이후 미술사의 큰 흐름은 이 혁신을 계승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가들은 내가 본 것의 본질을 담거나 색과 형태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폴 세잔, 반 고흐, 폴 고갱 등의 후기인상주의가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계승한 야수파와 표현주의가 현대미술의 주류가 되었죠.

그렇다면 신인상주의의 더할 나위없는 과학적인 방식은 왜 더 큰 영향력을 갖지 못했을까요. 신인상주의는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집중하여 프린터로 인쇄한 것 같은 정밀함은 얻었지만, 정작 작가 고유의 시선과 해석을 담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충분히 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발전된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생명력을 얻는 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요즘은 제미나이와 클로드로 안착했지만, 한동안 “챗GPT가 좋다고?”, “요즘은 제미나이가 대세라는데?”, “클로드 코워크가 일 다 해준다는데?” 등등 유튜브와 SNS에 들어가면 이런 말들에 휘둘려 꽤 시간을 빼앗기곤 했습니다.

새 도구를 익히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지만, 정작 그 도구로 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선행되지 않았던 거죠.

세잔은 일생에 걸쳐 사과와 산을 그리면서 자신만의 관점으로 형태를 해석했고, 반 고흐는 거친 붓질 속에 감정의 밀도를 담았습니다. 이들이 미술사를 바꿀 수 있었던 건 기법이 과학적이어서가 아니라 기법 안에 자기만의 시선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걸 배우는 것 자체는 좋지만 그에 앞서 “내가 이걸 수용하려는 이유는?”, “이걸 어디에 쓰면 도움이 되려나?”를 먼저 자문하는 게 좋습니다. 도구는 나를 대신해주지 않고 내가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비로소 쓸모를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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