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는 '묵히는' 시간을 견딘 사람이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한 분야에 몸 담으며 쌓아온 관점, 철학이 있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관점과 철학은 자신의 전공을 공부하는 과정 속에서 고민하고, 혼나기도 하고, 좌절감을 겪는 일련의 과정과 이를 아웃풋(글쓰기, 직장 등)하는 경험을 통해 나도 모르게 쌓이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막막하겠지만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소위 지식을 '묵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죠. 단순히 지식 암기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미술사로 예를 들면, 책과 논문을 통해 누구나 작가명, 작품명, 작품 설명과 같은 지식을 암기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암기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유사한 사례에 대한 경험, 다른 학자들의 기존 평가, 나의 관점과 기준이 조화를 이룬 상태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몇 년에 태어났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작품이 언제 제작되었고 등을 암기하는 건 시험을 보는 게 아니라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필요할 때 찾으면 됩니다. 암기에 시간을 투입하는 것보다 맥락을 음미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암기만 해서 아웃풋해봐야 생기없는 글과 강의가 될 뿐입니다. 그리고 억지로 외우지 않아도 오래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머리에 남습니다.

이 분야에서 통용되는 관점으로 적절한 자료를 찾은 후에 "나는 어떻게 해석하고, 그래서 어떻게 평가한다"까지 이끌어내도록 '묵히는' 시간을 견디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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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도 백자는 있었고, 조선시대에도 청자는 있었다.

고려시대에도 백자는 있었고, 조선시대에도 청자는 있었다.

호림박물관에서 일할 때 고려백자를 전시하며 묘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분명 흰색 백자인 건 맞는데 톤이 조선백자와 달랐달까요? 조선백자는 쨍하고 투명한 흰색이 많은 데 반해 고려백자는 글씨를 지울 때 쓰는 하얀 수정액 느낌이었죠. 조선백자 안에서도 흰색이 여러 갈래인데 고려백자는 또 다른 결이었습니다. 이때 색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점에 대해 새삼

By Lee Janghoon
도쿄도미술관의 《백화요란 - 바다를 건넌 에도 회화》 전시를 볼 때 알아두면 좋은 점

도쿄도미술관의 《백화요란 - 바다를 건넌 에도 회화》 전시를 볼 때 알아두면 좋은 점

일본 미술의 명품을 보려면 일본 외에 어디로 가야 할까요? 아마 많은 분들이 파리를 먼저 떠올릴 겁니다. 실제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미술은 '자포니슴(Japonisme)'이라는 용어가 확립될 정도로 일본 미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현재 파리의 기메미술관은 유럽 최대의 아시아미술 컬렉션을 자랑하고, 일본미술만 1만 점이 넘습니다. 우리나라 미술품도 많이 소장한

By Lee Janghoon
'기운생동'이 뜬구름처럼 느껴진다면

'기운생동'이 뜬구름처럼 느껴진다면

‘기운생동’은 원래 인물화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미술사를 공부할 때 이해는 되지만 뭔가 뜬구름 같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 개념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보시면 구체성을 갖게 됩니다. '기운생동(氣韻生動)'은 미술 작품에 대해 말할 때 보통 “생동감이 있고 실감난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일상에서도 사용하죠. 그런데 정확하게 무엇을 보고 “기운생동하다”고 할

By Lee Janghoon
논문으로 강의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이유

논문으로 강의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이유

직장에서 나와 독립할 당시 하고 싶었던 일은 크게 세 가지였다. "글을 쓰는 일상을 영위하자" "1년에 한 번은 좋은 사람들과 아트 투어를 가자" 그리고 "좋은 논문을 소개하자"였다. 공부를 계속 하면서 ‘이렇게 좋은 연구성과가 많은데 세상에 알려지지 않다니’라는 아쉬움이 늘 있었다. 나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By Lee Jangh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