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서 소리가 들린다.

그림에서 소리가 들린다.
김기창, <아악의 리듬>, 1967, 비단에 색, 86×98, 국립현대미술관

그림에서 소리가 들린다.

동아시아 화론에는 “무성시, 유성화(無聲詩, 有聲畵)”라는 말이 있다. “그림은 소리없는 시이고, 시는 소리있는 그림”이라는 의미다.

‘시와 그림은 본래 하나’라는 전통을 가진 회화사를 공부하며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실제 작품을 보며 체감했던 적은 매우 드물었다.

김기창의 <아악의 리듬>은 볼 때마다 소리가 실제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몇 안되는 작품이다. 선율이 화면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것 같다. 연주하는 모습을 재현한 작품은 많지만 음악 그 자체를 들려주는 작품은 흔하지 않다.

선율에 따라 움직이는 악사들과 공간을 휘감고 있는 학을 연상시키는 유려한 필선으로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표현한 점은 경이로움까지 느끼게 해준다. 대상의 본질적인 구조와 기하학적 견고함을 추구한 입체주의를 수용하면서도 김기창은 한 발 더 나아가서 서예적인 필치로 음악의 시각화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악사들과 악기의 형태를 입체주의적으로 해체 · 재구성하면서도 그 안에 운율까지 구현해 낸 것이다.

더구나 김기창은 어릴 때 청각을 잃어 음악에 대한 온전한 기억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의 운율을 유려하게 시각화한 그의 감각은 예술가의 감성은 확실히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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