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를 구독해주시는 분들이 다시 1,000명이 되었다.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시는 분들이 다시 1,000명이 되었다.

2022년에 뉴스레터를 시작할 때는 뉴스레터 플랫폼으로 스티비(Stibee)를 이용했다. 매주 뉴스레터를 보내면서 가장 좋았던 건 꾸준히 글을 쓰는 습관이 자리잡은 것과 가끔씩 받는 구독자들의 답장이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과 뉴스레터는 공개된 곳에 글을 쓴다는 점에서 그리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뉴스레터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느낌이 있다. 덕분에 글을 쓰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을 때의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콘텐츠의 엄정성을 떠나 편지쓰듯 쓰면 되니 글이 더 쉽게 풀린달까?

그렇게 매주 '이번 주는 어떤 이야기를 전할까?', '꼭 전하고 싶은 소식은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작년에는 책 출간 막바지 작업 때문에 글을 책과 뉴스레터 모두 쓰기 벅차서 잠시 휴재를 했다. 출간하고 바로 시작했어야 하는데 역시 한 번 루틴이 깨지니 돌아가는데 꽤 많은 버퍼링의 시간이 소요됐다. '다시 시작해야지'라는 생각만 계속 하면서 반년을 넘게 쉬어버렸다.

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재개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니라 편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강해졌는데 아마 이는 '공백기' 특유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 역시 성급하게 재개하는 것보다는 마음의 물잔이 찰 때까지 쉴 때는 쉬어버리는 게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빨리 다시 해야지'라는 부담이 아닌 '뉴스레터 너무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찬 지난 3월에 뉴스레터를 재개했다. 이왕 다시 하는 김에 뉴스레터의 정체성을 다시 가다듬고 다시 쉬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내 상황에 비추어 지속가능한 주기를 고민했다.

최신 미술계 소식을 전하는 미디어가 될 것이냐, 내 글을 전달할 것이냐를 두고 고민했고 최종 '미술을 바탕으로 한 나의 관점 전하기'로 결정했다. 미술계 뉴스는 나 아니어도 다른 곳에서 충분히 많이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굳이 나까지 끼어들어 소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공부하고 글을 쓰고 강의하는 일이 내 업의 본질인 이상 뉴스레터를 내 글을 전하는 창구로 유지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왕 다시 하는 김에 플랫폼도 바꾸기로 했다. 스티비도 훌륭하고 장점이 많지만 글을 쓰는 행위 자체는 조금 불편한 면이 있다. 마크다운 형식이 적용되지 않아 마치 한컴오피스에 하나하나 글을 쓰고 이미지를 불러와서 업로드하는 게 글쓸 때 흐름을 깨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스티비보다는 뉴스레터로서의 기능은 부족하지만 '글을 쓴다'는 행위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미국의 플랫폼인 서브스택(Substack)으로 옮기기로 했다. 영어권 사용자들이 대부분이라 서브스택의 장점인 네트워크 기능을 충분히 활용할 수는 없지만 글쓰는 것만큼은 매우 편하다.

노션에 모든 글의 초안을 써두는 내 습관에도 적합하다. 서로 마크다운 형식이 호환되기 때문에 노션에 쓴 글을 복사해서 바로 붙여넣기만 해도 되기 때문이다. 이미지 역시 별도 저장해서 업로드하지 않아도 복사-붙여넣기로 가능해서 글을 쓸 때 속도가 붙는다.

이렇게 서브스택에 내 뉴스레터(grinagrim.substack.com)을 세팅하고 1년 만에 뉴스레터를 다시 발행했다. 스티비에서 구독자 목록을 가져올 때는 구독자 수가 1,000명이 넘어서 꽤 고무적이었지만 너무 오래 쉬어서 그런가 발행할 때마다 구독을 취소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왠지 그럴 것이라 예상하긴 했다.

다행스러운 건 블로그도 오래 해왔고, 뉴스레터도 하면서 이제는 이런 거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공감해주는 사람들을 잘 챙기기에도 바쁘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이는 '나한테 잘 해주는 사람들을 챙기기에도 바쁘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는 내 삶의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이래놓고 또 감소하면 슬프긴 할듯 ㅋ).

대신 조금 의아스러웠던 건 새로운 구독자가 생각보다 빨리 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 역시 시간이 해결해준다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 다시 1,000명이 되었다는 알림을 받았다.

콘텐츠 마케팅의 관점에서 보면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편지쓰듯 보내는 뉴스레터치고는 꽤 감사한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오가면서, 유튜브를 보면서, 책을 읽으면서 늘 '다음 주 뉴스레터에는 어떤 이야기를 전할까'라며 고민한다. 이 고민은 설렘의 고민에 가깝다. 마치 친구를 만나러 가면서 '만나면 이 이야기 해줘야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시는 분들 중에 이 글을 보실 분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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