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상, 〈병국도(病菊圖)〉, 18세기, 종이에 먹, 28.5×14.5cm, 국립중앙박물관

미술사는 단어 그대로 ‘미술의 역사’이지만 ‘살아남은’, ‘기록에 남겨진’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시대별 모든 미술을 병렬적으로 나열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술사에 기록된 작품은 다양한 방법론을 통해 의미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들입니다. 시대별 경향(트렌드)과 미의식은 이 작품들이 모여 추출된 작품들간 공통의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케이스 스터디’

미술작가가 미술사를 공부하면 과거의 사례를 통해 작가들이 어떻게 기존 규범에 도전하여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는지, 그리고 이를 조형요소에 어떻게 적용했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글쓰기를 연습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모범이 될 만한 글을 필사하는 겁니다. 필사하는 과정에서 본받을 만한 작가의 문장 구조를 익히고 서술의 리듬을 체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넓혀주고 글로 표현하는 논리를 강화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마찬가지로 미술사 공부는 단순히 시대의 흐름을 좇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생각과 개성적인 표현으로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 데 필요한 '케이스 스터디'가 됩니다.

내 작업의 현재 위치 찾기

과거를 이해하면 현재를 읽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듯이 과거의 미술을 이해하면 나의 작업이 현재 어느 지점에 위치해있는지 냉정한 분석이 가능해집니다.

그 당시에는 세간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인기도 많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저평가되는 사례는 매우 많습니다. 반대로 당시에는 저평가받고 외면 당했지만 후대에 미술사의 중요한 작가로 기록되는 경우도 많죠.

미술사의 다양한 사례를 공부하면 마치 산 정상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듯이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고, 자신의 작업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이를 통해 현재 자신의 작업이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는지 파악하고, 어떤 전통을 이어갈지 또는 어떻게 도전할지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인문학적 통찰의 성장

동아시아의 회화 이론에는 '의재필선(意在筆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붓을 들기 전에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말과 행동을 즉각적으로 옮기는 것보다 마음가짐이 더 중요한 것처럼, 예술도 이와 같습니다.

미술은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핵심적인 매체이기도 합니다. 현대미술은 특히 정체성과 존재의 탐구가 주요 주제이기에,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미술사에는 과거 사람들의 생각, 취향, 표현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에 이를 공부하면 인문학적 통찰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더 나아가 인간과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