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도호 작품을 처음 마주하면 대개 비슷한 반응이 나옵니다.
“멋있고 아름답긴 한데, 무슨 의미일까?”
하늘거리는 반투명한 천으로 만든 집 앞에서 무엇을 봐야 할지 몰라 그냥 지나치는 분들도 많습니다. 서도호니까, 유명한 작품이라고 하니까 관심갖고 보긴 하는데 이 작품을 어떻게 보고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포착하기가 어렵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대규모 개인전(2026. 08. 27 개최)이 열리는 지금, 이 글에서는 서도호 작품을 전시실에서 조금 더 깊이 감상하기 위해 미리 알아두면 좋은 6가지를 소개합니다. 작가가 누구인지부터, 왜 천으로 집을 만드는지, 그가 공간을 어떻게 기억으로 바꾸는지, 작품의 어떤 포인트를 눈여겨보면 좋은지에 대해 정리했습니다.
서도호는 누구인가 - ‘집 짓는 미술가’로 불리는 이유
서도호(1962-)는 ‘집 짓는 미술가’로 널리 알려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설치미술가입니다. 2001년 마이클 주(Michael Joo)와 함께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참여 작가로 선정되며 국제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추상회화로 유명한 서세옥(1929-2020)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10522/7693182/9
그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 가운데 하나는 ‘집’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대목장과 함께 지은 성북동 한옥에서 자랐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회화와 조각을 공부했는데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겪은 이 ‘이주’의 경험은 이후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바탕이 되었습니다.

한옥이라는 익숙한 전통 공간에서 자란 사람이 낯선 도시의 아파트와 집으로 옮겨 갔을 때 느낀 거리감과 이질감이 있었을 겁니다. 서도호의 작품은 이 경험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그의 집은 단순히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의 공간은 아닙니다. 어디에 머물고, 어디를 떠나며, 한 사람이 장소를 옮길 때 무엇이 함께 이동하는지를 묻는 공간에 더 가깝습니다.
왜 ‘천’으로 집을 만들까?
서도호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재료입니다.
벽돌도 나무도 아닌, 얇고 반투명한 폴리에스테르 천으로 집을 만듭니다. 대표적인 직물 건축 작업에서는 자신이 실제로 살았던 집과 방을 실물 크기에 가깝게 재현하고, 문고리와 경첩, 전등 스위치, 콘센트 같은 세부까지 바느질로 옮겨 놓습니다.
왜 하필 천일까요?
천으로 만든 집은 가볍습니다. 접을 수 있고, 가방에 넣을 수도 있습니다. 한 장소에 고정되어 있고, 그래서 육중함이 먼저 느껴지는 건축을 몸과 함께 이동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꾼 셈입니다.
서도호는 미국에 살면서 서울의 집을 가져오고 싶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집을 옮기는 건 불가능하죠. 그래서 그는 집을 ‘소유’하는 대신, 집의 형태와 공간을 떠서 휴대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한옥을 해체해 다른 장소로 옮긴 뒤 다시 짓는 일을 목수들은 ‘집을 걷는다’고 표현했습니다. 전통 목조건축은 부재를 해체해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조립할 수 있습니다. 즉 집을 거둬서 옮겨 다시 짓는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걷다’는 ‘거둔다’는 뜻과 발걸음을 옮긴다는 뜻을 함께 품고 있습니다. 이 말이 영어로 옮겨지며 2025년 테이트 모던에서 열린 전시 《서도호: 집을 걷다(Do Ho Suh: Walk the House)》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고정되어 있어야 할 집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서도호의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도호의 작품을 볼 때는 시공간을 느껴야 한다.
서도호의 작품은 견고한 집 자체라기보다 그 집을 이루던 벽과 문, 계단과 복도의 윤곽을 얇은 직물로 옮겨놓은 공간의 흔적에 가깝습니다.
대개 조각가는 단단한 물질로 형태를 만들어 표현합니다. 서도호는 반대로 건축의 무게를 걷어냈습니다. 그의 작품을 마주할 때 처음 느껴지는 하늘거리는 천 자락의 아름다움이 그 결과입니다.
천이라는 매체의 성질 덕분에 그의 작품은 실제 건물을 표현했다는 느낌보다 어렴풋이 기억 속에 떠오른 집처럼 보입니다. 분명히 존재했던 장소인데 손으로 붙잡으려 하면 사라질 것만 같습니다. 마치 그곳에 존재했던 공기에 얇은 피부를 입힌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당시 선보였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이 대표적입니다.
서도호가 미국 유학시절에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에서 살았던 3층 주택을 실물 크기(높이 12m, 너비 15m)로 재현하고, 내부에는 어릴 때 살았던 서울 성북동의 전통 한옥을 배치했습니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의 집이 실제 크기에 가까운 구조로 포개지면서, 관람객은 어느 한곳만을 고향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이주자의 감각을 몸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겹치는 것은 장소만이 아닙니다. 성북동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미국에서 생활하던 시간이 한 공간 안에 동시에 나타납니다. 서도호의 집은 서로 떨어진 장소뿐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까지 한곳으로 불러옵니다.
서도호의 작품을 감상할 때는 개별 작품의 의미를 외우기보다, 공간과 시간이 어떤 방식으로 변형되어 있는지를 보면 좋습니다. 특히 문, 복도, 계단처럼 머무는 공간보다 지나가는 공간을 주목하면 의미 파악에 도움이 됩니다.

<Staircase> 계열의 작품에서는 자신이 살았던 집의 계단이 천으로 재현되어 천장에서 떠 있거나 허공에 매달립니다. 계단은 위와 아래를 연결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지는 아닙니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중간 지점입니다. 이주와 이동을 반복해온 서도호가 이런 ‘사이의 공간’을 주목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집, 기억, 정체성
서도호의 작품에서는 집, 기억, 정체성이라는 주제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이 주제들은 재료와 크기, 투명성, 구조 같은 작품의 형식으로 표현됩니다.
서도호의 대표적인 직물 건축 작업은 축소 모형이 아니라 실제 사람이 들어가거나 지나갈 수 있는 크기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시에 따라 그 안을 걸어볼 수 있게끔 설치되기도 하죠.
집 안에 들어서면 문고리, 계단, 콘센트, 스위치 같은 세부 역시 정교하게 재현됩니다. 천만으로 이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우선 감탄하게 되지만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집에 대한 기억을 표현한 것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예전에 살던 집을 떠올릴 때는 집 전체의 모습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살면서 익숙해졌던 소소한 것들로 기억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문고리의 형태, 이를 잡았던 손의 높이, 복도의 폭, 계단을 오를 때 손은 어디를 짚었는지처럼 몸에 기억이 저장되어 있는 겁니다.
서도호는 어렴풋이 내부가 보이는 천을 재료로 선택함으로써 이러한 기억을 물질로 표현했습니다. 그 어떤 매체보다 가장 ‘기억’스러운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서양식 집 속에 한옥을 배치하고, 혹은 집이 서로 충돌한 것처럼 끼워 넣는 방식으로 이주에 따른 정체성의 형성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어디에서 어디로 옮겨 산다고 해서 이전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새로운 정체성으로 완전히 교체되는 것은 아닙니다. 떠나온 장소의 기억과 현재의 장소, 그 사이에서 형성된 경험들이 한 사람 안에 겹쳐집니다. 서도호의 작품에서 서로 다른 집이 포개지고 충돌하는 모습은 바로 이런 복합적인 상태를 시각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도호의 작품을 볼 때는 눈으로만 보는 이미지가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공간이라는 점을 떠올리는 게 좋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서도호 전시를 볼 때는 이런 질문을 떠올려 보세요.
2026년 8월 27일(목)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하는 《서도호》 개인전은 2027년 2월 9일(화)까지 열립니다. 학생 시절의 초기작부터 주요 작품과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까지 서도호의 작업 세계를 폭넓게 살펴볼 수 있는 대규모 전시입니다.
전시를 관람하기 전에는 우선 ‘서도호의 작품은 눈으로만 보는 것보다 몸으로 공간을 느낄 때 더 와닿는다’ 이 한 가지만 기억해두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전시실에서는 만약 내부를 들어가도 되는 작품이 전시된다면 멀리서 바라보고 실제 동선을 따라 들어가보세요. 문을 지나고 복도를 걷고, 벽 너머이 비치는 모습을 바라보며 작품의 의미를 찾기에 앞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좋습니다.
‘왜 이 집은 이렇게 가벼울까?’
‘왜 안과 밖이 동시에 보일까?’
‘어떤 부분과 어떤 부분이 서로 겹쳐있는가?’
‘문고리 같은 세부 요소는 작가에게 어떤 기억이었을까?’
‘나는 어떤 장소에 있었고, 지금까지 유지되는 과거의 기억은 무엇이며, 현재는 어떤 장소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이렇게 이 질문들을 떠올리며 작품을 느끼다 보면 ‘집과 기억’, ‘이주와 정체성’이라는 작품의 핵심 키워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천이라는 재료, 실제 공간과 닮은 크기, 반투명한 벽, 정교한 봉제선, 서로 다른 집의 겹침과 충돌이라는 작품의 양식을 눈여겨보면 작품이 말하는 것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p.s.
서도호의 관심이 집에만 머무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Floor>에서는 수많은 작은 인물들이 유리 바닥을 떠받칩니다. 한 개인이 공간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여기에서 개인과 집단의 관계로 확장됩니다.

